📚[책 리뷰]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 강지나) - 가난, 복지, 시혜, 사회적 자본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 강지나) 을 소개합니다.
“가난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
🔖책 소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강지나 저)는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을 담은 책입니다.
막연히 "가난은 힘들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디테일, 그 안에서 겪는 불안과 시도, 실패와 회복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가난이 주는 어려움이 단순 경제적 어려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진로·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어려움이 되는가를 디테일하게, 예리하게 풀어져있습니다.
이 책은 빈곤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아이들과의 10년간의 관계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만날 때는 열일곱 살이던 청소년들이 서른 즈음의 청년이 되기까지, 그 시간 동안 이들이 겪은 교육, 노동, 복지의 현장을 따라갑니다.
딱딱한 보고서처럼 쓰인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자연스럽게 녹여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왜 자꾸 실패하는 인간관계를 반복하는지, 왜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진로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지, 그게 그 사람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조건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작가에 대해
이 책의 저자 강지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교사였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며 가난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경험을 계기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 후로 청소년 정책을 연구하면서, 열일곱 살의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10년 넘게 이어온 기록이 바로 이 책입니다.
현장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함께 걸어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선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가난을 겪는 사람들을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가 이 책 전반에 담겨 있습니다.
📺 참고로, 돌베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저자와 책의 실제 주인공이 함께한 인터뷰 영상도 꼭 추천드려요. 책을 읽고 나면 이 영상이 더 깊게 와닿습니다.
👉👉강지나 작가 인터뷰 보러가기 (강지나 작가 X 장일호 기자 X 소희)
https://www.youtube.com/watch?v=v0kPToR0IrA
🔖인상 깊었던 구절과 사례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역량의 박탈이다.”
— 아마르티아 센 인용
▫ 우울을 견디는 삶, 소희
가족 구성원들이 정신적 취약성(우울증), 폭력, 알코올·약물·도박 중독 등의 문제행동을 보였다. 이러한 문제행동들은 빈곤 극복을 위한 합리적 판단, 장기적인 계획 설계, 실천 의지 등을 약화시킨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규칙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통제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는 학교환경은,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이나 습속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량, 자립은 어떻게 가능한가? 소희는 역량이 약한 상태에서 어떻게 대학 입학과 자격증의 관문을 뚫었는가? 소희에게는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도움을 준 친구가 있었고, 대학 입학을 물심양면 도와준 사회복지사, 복지관이 있었다.
즉, 자신을 믿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 관계망이 있었던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온 아마티아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함. 빈곤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 (책에서 발췌)
소희는 어떤 부분 굉장히 건강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를 이어온 가난, 학대, 병력, 그로 인한 어려운 환경'은 부모 탓만 하고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해요. 내가 만났던 청소년들은 모두 부모님 탓을 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어요. 제3자가 봐도 부모님의 모습은 폭력적이고 건강하게 성장할 가정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대~20대 초반까지를 만났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청소년들의 다수는 부모님 탓,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고 느꼈어요. 부모님의 삶과 나의 삶, 조부모의 삶을 각각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시기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희는 ‘어머니도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이 세상의 희생자’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선택하고 그 선택이 잘못돼서 이런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닌 것처럼, 어머니도 아무런 선택의 여지 없이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 그런 사고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런 사고를 도와주는 교육과 상담은 어떤 것일까. 그런 점이 저는 건강하고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10대가 지나고 20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독립과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걸 도와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 눈에 띄지만 시선이 무서운 혜주
실패의 경험이 쌓이자 뭔가 끈기 있게 해내지 못하는 사람, 자신감이 없고 주눅 들어 있는 사람으로, 사진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른 여러가지 도전을 실패로 이끌었다. 자존삼 상실의 악순환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을 만나서 놀 때, 자신에게 도움되기보다는 자신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남자친구를 사귈 때는 건설적인 관계가 되기 보다는 착취당하는 관계가 되기 십상이었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약한 성격 때문에 그런 부정적인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다. / 자아존중감이 낮기 때문에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사람들을 선별할 줄 아는 힘이 부족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과 애착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걷는 친구들에 비해 인간관계가 좁고, 특정 부류에 국한되어 있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제한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가정의 학교 밖 청소년들은 “네가 불성실해서 학교를 그만뒀는데 무슨 요구를 할수 있느냐”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이들이 학업을 마치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불성실’ 했고 ‘방종’했다고 청소년 개인에게만 손가락질을 하기에 우리 사회는 충분히 그들을 포용할 만한 제도와 환경을 마련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청소년기를 남들보다 거칠고 힘겹게 거쳤다고 해서 이후 인생에서 모든 기회를 다 박탈할 수는 없다. (책에서 발췌)
내가 만났던 청소년들 중 다수가 혜주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인간관계가 한정적이고, 긍정적, 건설적 인간관계가 별로 없었어요. 가족, 연인, 친구 모두 소모적(?), 착취(?)관계가 많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본인도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워 보였어요.
어디서 만난 친구와 술을 마시고, 방을 잡아서 논다고도 했고, 걱정되는 관계들이 많았어요. 10대 때 친구들과 음주의 경험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만난지 얼마 안된 누군가, 어떤 사람인지 정보가 없는 누군가와 그런 관계를 맺는 건 매우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족과 갈등이 심하고, 친구, 연인과 갈등이 심했지만 끊어내야할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거나, 갈등을 풀기 위한 노력을 해봐야 할 관계들과는 연을 끊어버리곤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장기적인 관계가 별로 없고,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 쌓이지 못하는 관계를 계속 맺었다.
안타까운 건 방황(?)하는 청소년 중에도 집안의 재정적 지원이 가능한 청소년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반면(자격증을 따거나, 진로를 결정하고 학원을 다니고, 졸업 이후의 삶을 계획하거나), 집이 가난한 청소년들은 그 상태를 계속해서 반복했던 것 같아요.
삶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았어요. 경제적 어려움은 집에 빨간딱지가 붙기도 했고, 부모님이 이혼을 하거나 수시로 싸우시는 경우가 많고, 부모님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집에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하거나, 집에 돈이 떨어져서 밥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이거나.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도 있는데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들. 뭔가 발전적 고민, 의지를 갖고 지속적 노력을 하려면 최소한 의식주는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의식주가 불안정한 삶에서 다른 고민이 가능할까요. 누구라도 어려운 것 같아요.
몇몇 청소년들은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하는 (막말로) 식모살이에서 벗어나기 어려워보였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어요. 그 청소년이 20살이 넘었고, 독립을 하고 싶어했으나 부모님이 못하게 했던 건 어린 동생들을 돌볼 누군가가 필요해서 였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주거지원 제도를 활용해서 독립을 시도 했었지만, 아직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스무살이 넘도록 그 삶에서 나오지 못했는데, 20대 후반 정도 되면, 혜주처럼 자기 길을 찾게 되기를...
▫ 미래 사업가, 우빈
일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용돈을 직접 벌어야 하거나, 진로 준비 대신 노동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다. / 나이가 어리고, 공부보다는 일을 해야만 하는 청소년, 아마도 가난한 청소년일 것이라는 생각이 무시의 근거가 된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그대로 정책으로, 태도로, 일상적으로 던지는 시선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에는 가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가 그대로 담겨있다.
빈곤층 청소년을 인터뷰하면 아이들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바로 현금을 만질 수 있고 일한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에 비중을 많이 둔다. 왜 장기적인 안목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준비하지 않고 당장 쥘 수 있는 현금에 집착할까? 어릴 때부터 재화가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과 결핍감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수중의 현금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 장기적 안목의 장래희망을 꿈꾸기 어렵다. 아르바이트, 배달 등..
우빈같은 청소년들에게 겨우 그것밖에 꿈이 안되냐, 대학은 가야한다, 더 크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지 등의 얘기하기 어렵다. 응원해주어야. (책에서 발췌)
일하는 청소년에 대한 무시가 곧, 가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라는 표현에 아주 공감합니다. 공부하는 대학생을 위한 정책과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노동을 시작하는 청년에 대한 정책은 많이 달랐습니다. 전에는 더 차이가 컸다고 봐야겠죠. (사실 대학생 외에는 청년을 위한 정책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 취업성공패키지 등의 취업지원 제도도 대학 재학생, 졸업생이 주된 대상이었음. 최근엔 이런 문제제기로 좀 늘어난것)
가난한 청소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노동해야 하는 청년을 위한 제도는 '시혜'로 보입니다.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는 이 미묘한 차이가 '가난'에 대한 사회의 평가고, 태도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야 이 삶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저 또한 돈에 집착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때 안타깝기도 하고, 꼰대 발언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어떻겠냐는 둥, 뭐가 하고싶냐는 둥,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하라는 둥,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미래계획이 필요하지 않겟냐는 둥..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 너무 현실성 떨어지거나 어려운 말들을 했던 것 같네요. 이 책을 읽고 뒤늦게 돌아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내가 이게 답이니 이걸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줬어야하는데 참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슈퍼 긍정의 에너지, 지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을 창피해서 감추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지현의 태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더욱이 지현 또래의 친구들 중 빈곤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태도였을 것이다. 가난을 증명하는 글을 써서 장학금을 받는 일이 왜 부끄럽지 않은가. 왜 저렇게 당당하며 가난이 자신의 강점으로 둔갑하는가.
나는 지현이 긍정적으로 살아오며 빈곤을 극복한 진짜 힘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일 뿐이지, 내 잘못도 죄도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현은 간파하고 있었다. 다만 가난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맞서 싸우는 일이 버거웠을 뿐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지현의 전략이 영리하고 훌륭했던 것은 세상의 편견과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해 나갔다는 것이다.(책에서 발췌)
가난과 나를 분리하는 것. 너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참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조건에서 지현 처럼 성장하기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대비해봤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이 상황에 처해있었다면.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도 "나라면 이런 상황을 이렇게 헤쳐나가서 이렇게 했을거야!" 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삶에 겸허해 집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의 8명이 뭘 잘못해서 힘든 10대 20대를 보낸게 아니라는 것이죠. 열심히 살아내려고 부던히 애썼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현의 삶에서 놀라운 점 또 하나는 엄마로부터의 독립이었습니다. 엄마가 고생해온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지현은 성인이 되고나서도 모든 걸 엄마를 기준으로 생각했다고... 월급이 들어오면 당연히 엄마에게 갖다주고, 엄마의 모든 걸 책임져야하는 것처럼. 근데 결혼을 하고 스스로의 가족을 꾸리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이것은 가난과 관계없이 잘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내 주변에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성인들이 몇몇 있었어요. (부모를 버리라는게 아니라) 각자의 삶을 영위하듯, 부모의 문제는 부모가 해결하고, 자식의 문제는 자식이 해결하고,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살아야 하고, 정 안 될 경우 가족단위 고민을 해야하는데, 부모의 모든 삶을 책임지는 자식들이 있어요. 그 때문에 독립을 못하거나, 그 때문에 연애·결혼을 못하거나. 삶이 돌아가는 기준에 부모기 있는 경우들..
저 또한 엄마에 대한 어떤 책임감, 부채감 같은게 있었습니다. 엄마는 대인관계를 맺는걸 어려워하시는 편인데, 엄마가 한국에 친척 친구들도 거의 없으니 내가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엄마가 한국에서 관계 맺는게 어려울 때 내가 도와줘야 하고, 엄마가 한국에서 외롭지 않게 내가 옆에서 계속 있어야 한다는 어떤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엄마의 삶인데, 수십살이나 어린 내가 뭘 그걸 어떻게 책임진다고. 독립해서 나올 때 엄마는 많이 아쉬워하셨지만, 엄마는 또 엄마의 인간관계를 맺어가셨어요. 우여곡절, 어려움 고민들도 있으셨겠지만 관계의 영역을 넓혀가시더라구요. 괜한 걱정을 오래 한거죠. 사람 누구나 자기 힘을 갖고 있는데 말입니다.
슈퍼 긍정의 에너지, 지현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한국사회의 공공영역 지출은 여전히 매우 적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프라는 종교시설, 개인 독지가에 의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이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저긍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회 풍토를 낳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존재이다.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신과 자존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정체감)이 삶에 필수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경제적 도움을 얻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현’과 ‘도움요청’은 자칫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계층, 어떤 연령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표현하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사회적·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약한 개인의 문제이며, 개인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현의 가족은 ‘나’라는 개인의 존재와 가난한 상황을 분리해서 ‘나’의 사회적 정체감에 훼손을 주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했고 도움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호소했다. 단순히 필수적인 생존자원을 끌어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하려 했고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긍정할 줄 알았다. ‘생존하는 나’를 넘어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있게 살아가는 나’를 추구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풍부했다. ’빈곤’은 그저 나를 둘러싼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개인의 부족함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지점이 지현의 가장 강인한 면이라고 생각했다.
빈곤층은 생존 자체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책에서 발췌)
이 책의 핵심은 이 부분이 아닐까. (명문이라고 생각함..)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이유. 모두가 지현처럼 성장하기는 쉽지 않죠. 가난한 청소년 중 지현과 같은 사례가 0.1%는 될까요. 국가가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전부가 아니라,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있게 살아가는 나” 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이 필요하다.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자아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것까지를 목표로 하는 사회적 설계가 필요하다.
▫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
정상가족 프레임은 이 프레임 밖에 있는 비정상가족을 모두 소외시키며, 여기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모든 문화와 정책의 기본 단위가 ‘정상가족’ 이 되고 바람직한 삶의 표상이 된다. 때문에 중산층은 부와 권력을 세습시켜 안전한 ‘정상가족’을 자녀 세대도 이어나가길 바란다. 이는 우리집, 우리 애만 잘되면 된다는 가족 이기주의를 만든다.
사회적 자본 : 개인이 사회젹 관계 안에서 형성한 정체성, 가치 등과 함께 신뢰, 협력.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안에서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빈곤 논의에서는 비빈곤층은 경제적 자본도 갖추고 있지만 사회적 자본의 힘에 의해 기존의 부를 더욱 지킬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빈곤가정은 경제적 자본도 부족하지만 사회적 자본의 빈곤으로 인해 빈곤 상태가 유지되고 세대를 이어 전수된다고 설명한다.
'가난은 사회적 자본의 결핍' 이라는 표현도 나오는데 이것 역시 인상적인 표현이었어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랄 경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 조언 해줄 사람, 좋은 환경을 소개해주고 추천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 큰 차이라는게 느껴졌습니다.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많이 만나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릴때 '롤모델' 이라고 하죠. 좋은 롤모델, 다양한 삶의 방식, 고갈되고 소모되는 삶이 아닌 즐겁고 건강한·미래지향적 삶을 사는 주변인들은 이런 저런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주변에 운동하고 건강한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나도 영향을 받는 것처럼, 가난은 그 '사회적 자본'이 부재하다는 거죠.
보고 배울 삶이 별로 없는 경우,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하는 건 10대도 20대도 30대도 50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누군가를 "노력하지 않아서 저렇게 사는 사람" 으로만 바라보는 건, 내가 건강하게 성장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나 혼자의 재능, 능력이라고 생각하는건 꽤나 건방지고, 좁은 사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빈곤의 늪, 수정
만약 당신이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태라면, 사기 피해를 당하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하고 심리적으로 다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합리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기 힘들다. 빈곤층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있고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 앞에 닥친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다. 결국 의도하지 않았고 심지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가지 복잡한 일데 연루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사회적으로는 부모가 자신의 노후생활을 자녀에게 의탁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관습이 효라고 설명한다. 아름답게 '부모님 댁에 전화를 자주 드려서 정을 표현하고, '보일러를 놔드릴' 수 있다면 문제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피폐 하게 하면 문제가 된다. 안타깝게도 가난한 가족에게는 그런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근본적으로는 가난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인습적으로 '가족 공동체' 단위에 여전히 젖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체제나 생활구조는 이미 '개인' 단위의 분화가 일어났지만 인습과 문화가 그것을 따라오지 못해서 생기는 문화 지체 현상이다. 빈곤가족은 '가족 공동체'로 묶어서 바라보는 사회적 인습 속에서 두 가지 어려움을 직면한다. 그것은 자녀의 양육 책임, 그리고 부모 의 노후 봉양을 개별 가족 공동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제도적 관행 이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빚 에 몰리고 생활고에 시달려 '동반자살'을 했다는 가족의 뉴스를 심 심찮게 접하는 것도 그런 맥락 속에 있다. 자신은 괴로움에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남은 아이들은 사회가 잘 키워줄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런 살인 행위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녀 양육이 가족만의 몫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연로한 부 모의 부양 책임도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몫이 되어야 한다.
첫 노동시장 진입까지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가족 공동체가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현 구조는 빈곤을 재생산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계층 상승의 기회가 거 의 없는, 아예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구조인 셈이다.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OECD 국가에서는 소수 상류층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는 좀 더 넓은 계층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부모의 부와 계층이 세습되는 사회가 되면서 부모와 같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부모에게 의지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청년 세대의 가난은 과도기적이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현재의 가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직업훈련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일-학교 병행이나 일-가정 병행(결혼한 경우) 제도 등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이런 제도들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평생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다. (책에서 발췌)
'효’라고 하는 이름으로 자식이 어디까지 감당해야하는 것일까. 자식들은 당연히 부모님을 부양하고 싶고, 잘해드리고 싶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영역 이상의 것은 다른 문제다. 폭력, 술, 도박 등 자식이 감당할 수 없고, 감당할 필요도 없는 문제들이 있다.
어느 인류학자가 “지금의 인류는 결혼과 출산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진화다” 고 표현했다. 부모님에 대한 부양,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지 또한 스스로 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이상 ‘효’라고 하는 또 하나의 억압이 작용하기 어려울 것.
🔖 전체적인 소감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단순한 ‘사례집’이 아닙니다. 이 책은 가난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이 더 널리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교육, 사회복지, 정책, 연구 분야에 있는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가난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실제 사례와 연결된 맥락 안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많은 복지 담론이나 교육 정책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해 '시혜'를 말하지만, 그 '시혜'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가난'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정책은 사회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들의 성장과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저는 국가의 교육은 이러한 관점과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 그래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어려운 과정을 겪는 사람, (꼭 가난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낙오자로 낙인찍히는 누군가의 상황을 ' 개인의 잘못' 이 아닌, '배경, 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짚어내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사회가 책임지고 바꿔야할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책 소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강지나 - 교보문고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처음 만날 때는 열예닐곱 살의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서른 즈음의 청년이 되었다. 10년간 정성스럽게 기록된 가난과 성장의 시간들25년 경력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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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강지나
출판사: 창비
출간연도: 2023
분야: 사회학, 청소년 복지, 빈곤 구조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가난을 겪는 청소년들의 삶을 따라가며,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기록한 르포이자 분석서다. 저자 강지나는 오랫동안 청소년 복지 현장에서 일하며 축적한 사례를 바탕으로, 가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에 작동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짚어낸다.
◆ 이 책의 저자 인세와 출판사 수입의 일부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을 위해 사회단체에 기부된다고 하네요!
by 비지